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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룽산(化龙山)의 정상에 위치한 문묘(文庙)는 명성화(明成化) 중기에 만들어 졌고 홍치(弘治) 10년에 복구되였으며, 명계(明季,명나라 말엽) 병선 이후에 와서는 대성전(大成殿) 한 칸만 남았다. 대청(大清) 건륭제 26년, 지현(知县) 채옥화(蔡玉華)는 권력자들을 거느리고 숭성사(崇圣祠)와 동서 무극문(庑戟门)을 증축했고, 가경(嘉庆) 23년에 와서는 감생주(监生周)가 표찰을 올려 제전을 헌납하고 조곡 40석을 거두어 춘추 정제를 지냈으며, 도광(道光) 5년때 사민(士民)들은 다시 궁벽을 쌓고 영성문(棂星门)을 재건축 하였다. 24년, 지현 여수생(余遂生)은 오랜 세월 동안 경복하여 명사와 장로들을 거느리고 재 복구하다가 경비의 지원으로 인해 중지됐다. 동치(同治) 8년, 지현우등(知县于腾), 훈도역训导易) 전파(全斐), 건설을 감독하여 대전(大殿) 1칸, 좌우 2무 각 5칸, 극문(戟门) 3칸, 숭성사(崇圣祠) 1칸, 탈의수찬(更衣修馔)·제기·창고 등 여러곳과 극문외향현(戟门外乡贤), 명환(名宦), 충의(忠义), 절효사사(节孝四祠) 및 영성문(棂星门)궁벽을 짓기도 했다.